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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마지막 24시간 – 인류의 양심이 떠나는 순간

실현부자 2025. 4. 24.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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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바티칸의 하늘은 유난히도 고요했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가난한 이들의 벗이자, 지구의 수호자였던 그는 임종의 순간까지도 기도를 놓지 않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24시간은 단순한 생의 끝이 아닌, 한 인류의 지혜가 스러지는 장면이었다. 오늘은 그의 마지막 하루를 되짚으며, 교황으로서의 삶과 그가 남긴 유산을 되새겨본다.

 

1. 고요한 아침 – 바티칸의 내부 움직임

교황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된 건 전날 밤부터였다. 오랜 지병과 고령으로 인한 합병증이 겹쳐, 주치의는 밤새 곁을 지켰다. 그의 침실엔 가장 가까운 측근들만 출입이 허락되었고, 비공식적으로 ‘임종 대비 의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아침 6시, 교황청 국무원장과 교황 개인 비서가 병상 옆에 도착했고, 교황은 마지막 병자성사를 받았다. 이는 죽음을 준비하는 가톨릭의 성사 중 하나로, 영혼의 평화를 기원하며 이루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순간에도 침묵 속에서 기도하며, 마지막까지 세상과 이웃을 품었다.

2. 조용한 작별 – 마지막 인사

오전 9시, 그는 로마 교구장, 몇몇 추기경들과의 면회를 허락했다. 미약한 목소리로 "교회는 나보다 크며,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절대 잊지 마시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프란치스코답게 마지막까지 겸손했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다.

11시,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유언장이라기보다는 기도문에 가까웠다. "주님, 제가 맡은 사명을 모두 이루었나이다. 이제 그 품으로 돌아갑니다."
그의 손엔 늘 지니던 로사리오가 쥐어져 있었고, 창밖에선 성 베드로 대성당의 종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3. 임종, 그리고 세계가 멈춘 시간

오후 3시 33분. 바티칸 의료진은 교황의 심장이 멈췄음을 공식 확인했다. 국무원장과 비서관이 사망을 보고하고, 바티칸 라디오와 교황청 웹사이트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이 전 세계에 발표되었다.

성 베드로 광장에는 자연스레 신자들이 모여들었고, 수많은 이들이 눈물 속에 기도하며 촛불을 들었다. 뉴욕에서 아르헨티나, 케냐, 서울에 이르기까지 세계 교회는 애도 미사를 시작했다.

4. 세데 바칸테 – 교황좌의 공백

교황의 선종과 함께 시작된 '세데 바칸테(Sede Vacante)' 기간. 교황청은 9일간의 공식 애도에 들어갔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신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신자들의 참배 행렬은 밤을 새우며 이어졌고, 추기경단은 차기 콘클라베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바티칸의 의전팀은 삼중 관(나무-아연-참나무)을 준비했고, 교황의 간단명료한 유언에 따라 성대한 장례식보다 검소한 미사를 요청한 바 있었다.

5. 영원한 휴식, 그리고 유산

장례 미사는 선종 5일 후,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전 세계 정상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걸어온 '사랑의 여정'을 함께 되새겼다.

그의 유해는 교황 요한 23세 곁에 안장되었고, 무덤 비문엔 단 네 글자 – “Miserando atque eligendo (자비로 부르셨다)” – 그가 평생 좌우명처럼 간직했던 문구가 새겨졌다.

6. 그가 남긴 것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역사상 첫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이자, 첫 예수회 교황이었다. 재임 동안 그는 교회의 개혁, 성추문 문제의 직면, 기후변화 대응,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연대 등 수많은 도전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가 남긴 주요 문헌은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비롯해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등이 있으며, 가톨릭을 넘어 인류 전체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마무리하며 – 우리가 기억할 이름,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지막 24시간은 단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을 사도로 살아온 이가 마지막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증언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떠난 빈자리는 크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더 크다. 이제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그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가난한 이를 위해 교회는 가난해야 합니다."
그의 이 말처럼, 교황 프란치스코는 마지막까지 ‘예수의 친구’로 살다 간 사람이었다.